뒤집힌 곳 (The Upside Down)1

2025

Critique · 이규식 (서울시립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

축축한 꿈 Fever Dream》, LDK.DT, 2025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질감이 미묘하게 달라짐을 느낀다. 바닥은 눈으로 보기엔 마른 듯하지만 어쩐지 얇게 습기가 스며 있다. 통로는 길고 나지막하며 유난히 많은 문은 저마다 다른 규격으로 늘어서 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턱이 어렴풋이 그려지고, 불온하게 깜빡이는 조명 아래에서는 모든 장면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깜빡임은, 마치 시간을 잘게 잘라 망막에 새기는 듯하다. 공간에 대한 첫인상은 전시가 던지는 조건을 미리 알려주는 암호와도 같다. 미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피어나는 불안감은 마치 열병 중에 꾸는 꿈처럼 우리를 축축하게 만든다. 최우형의 첫 번째 개인전 《축축한 꿈 Fever Dream》은 게임을 주제로 다루지 않는 대신, 게임의 문법을 빌려온다. 여기서 문법은 줄거리나 상징의 나열이 아니라 작품과 공간, 그리고 관객을 엮어 작동시키는 일련의 규칙 체계에 가깝다. 전시의 중심에는 게임 작업 〈축축한 꿈〉이 자리하고, 그 주위를 영상과 설치, 사운드가 감싼다. 각각의 매체는 다른 시간을 데려와 같은 공간에 포개놓는다. 이곳에서 관객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일을 넘어, 이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읽어내는 역할을 제안받는다. 작가는 명확한 의미를 건네기보다 절차를 통해 보여주려 하고, 관객은 이동과 머무름, 참여와 관찰을 통해 그 절차의 숨겨진 구조를 몸으로 번역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관객의 위치는 단일하지 않다. ① 손끝으로 직접 조작을 수행하는 사람(플레이어), ② 한 발 떨어져 그 결과를 멀리서 가늠하는 시선(관찰자), 그리고 ③ 표면 아래 감춰진 설계를 더듬어 찾아내려는 감각(설계자)이 동시에 작동한다. '플레이-관찰-설계'의 관계는 위계가 아니라 순환에 가깝다. 관객은 어느 순간에는 플레이어가 되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구경꾼이 되고, 또 다른 순간에는 배경에 가까워진다. 이 교대가 짧은 간격으로 반복될수록 전시의 기묘한 현실감은 한층 깊어진다. 규칙을 파악한 세계는 임의로 펼쳐진 장면보다 더 실제처럼 관객에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작품은 홀로 완결되지 않고, 관객의 몸을 경유하며 드러난다. 선택지, 혹은 복잡한 분기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까? 게임의 문법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왔던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조용히 드러낸다. 규칙, 보상, 충돌, 그리고 문턱과 같은 요소가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은 대체로 감춰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결말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결국 특정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능동성은 실재하므로) 이곳에서 관객은 자신이 불러온 결과를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와 은밀하게 맞물려 있다. 공간을 구성하는 모티프는 게임과 전시의 작동 원리를 가시화한다. 문턱은 선택을 은유하고, 깜빡이는 조명은 시간을 분절해 우리의 감각을 촘촘하고 예민하게 만든다. 창문을 가로지르는 덕트는 방과 방 사이의 온도, 미세한 소음,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불확실한 무언가를 운반한다. 어딘지 미묘하게 거슬리는 규격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어긋난 용도, 그것들이 자아내는 기묘한 분위기는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호출한다. 익숙한 구조와 표면을 지녔지만 목적이 비어 있는 공간. 그래서 낯섦이 한 박자 더디게 도착하는 공간. 이곳에서 공포는 날카로운 소리로 증폭되기보다, 시간의 늘어짐으로 체감되는 것에 가깝다. 시간은 늘어지며 직선에서 이탈한다. 이미 포착된 이미지들은 과거를 현재에 붙잡아두고, 플레이는 지금을 여러 갈래의 다음으로 분기시키며, 텍스트와 기호는 아직 오지 않은 독자를 전제한다.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계 위의 세계가 팽창하며 우리를 압박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축축한 감각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낡은 관습과 무언의 합의 위에 누적된 작은 균열들, 그 틈에서 새어나오는 붕괴의 징후들 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간다. 전시는 이 불안한 예감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흔들리는 세계 위에서 어떻게 걸을 것인가.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폐기할지, 누구의 시간을 지불해 어떤 규칙을 새로 쓸 것인지. 멸망을 예감한 채, 다음 문턱을 넘는다.
  1.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의 설정 및 동명 에피소드 참조.